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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명 [inspiration] 프리다 칼로, 영혼의 다이어리 Frida Kahlo, Diary of the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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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에서 꽤 긴 시간 동안 절실함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말입니다. 하지만 늘 절실하다 해서 그 결과가 좋다는 법은 없습니다. 간절히 원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우리의 삶을 덮치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실망하고 좌절하며 결국 포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태어난 순간부터 비운의 삶을 살게 되었어도, 고단하고 거친 삶이 계속되어도, 끊임없는 열정과 사랑을 간직한 채 살아갈 테지요. 멕시코 출신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를 소개합니다.
 
프리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 시티 교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비운은 6살부터 시작되었는데요. 6살이 되던 해 척추성 소아마비에 의해 오른쪽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고, 이는 평생 동안 고통을 안겨준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25년 프리다 칼로가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겪게 됩니다. 그로 인해 부러진 철제 난간이 프리다 칼로의 옆구리와 골반, 그리고 자궁까지 뚫고 나가게 됩니다. 요추의 세 곳과 쇄골, 갈비뼈가 부셔졌고 왼쪽 다리는 골절이 열할 군데, 오른발은 탈구 된 채로 으깨졌습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를정도로 암울한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녀는 그때부터 병상에 누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사고로 인한 아픔이 그림의 주된 주제인 동시에 본인의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겪게 되는 고통을 자화상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아에 대한 고찰과 자아의 재수용을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당시 그녀의 그림은 초현실주의적이라는 평이 지배했는데 그녀는 이러한 의견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린 그림은 자기의 고통을 표현한 것이었고 그러한 고통은 그녀에게 있어 현실이었기 때문이지요. 

프리다 칼로를 언급하면 디에고 리베라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립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17살의 프리다 칼로는 벽화작업을 하고 있던 멕시코의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사랑의 감정을 넘어 예술적,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며 유대감을 쌓아갔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는 문란한 사생활로 외도를 거듭했고, 결국 프리다 칼로는 세 번에 걸친 유산과 이혼 그리고 재결합 과정을 겪으며 여성으로서의 큰 고통을 겪었으나 그 고통을 작품으로 남기며 극복하려 애썼습니다. 그 강인한 의지가 이후에 진보적인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여 페미니즘의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녀가 직접적으로 페미니즘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유명했던 대부분의 화가들이 남성이었던 점, 그리고 그녀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여러 요소들 때문에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자화상을 보면 작품 속 누드는 남성의 성적 대상물로 전혀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여성 신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거나 감상자를 편안하게 놓아두지 않았는데 <부서진 척추> (La columna rota) (1944)가 확실한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부서진 척추>는 가슴을 가르고 몸을 관통하며 솟아오른 기둥이 조각조각 부서지고 몸에는 못들이 화살처럼 박혀져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다른 작품들 속 여성 누드에 나타난 이미지는 여성의 성적 매력을 부각시키는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에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그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페미니스트들이 공유하는 여성 차별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발의 의미로 해석 되기도 합니다. 

프리다 칼로는 47살에 폐렴으로 사경을 헤매다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그녀의 삶은 태어난 순간부터 비운이 따라 다녔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었고, 디에고 리베라의 외도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사랑을 했습니다. 
평생을 괴롭혔던 고통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당당히 마주하고자 했던 그녀의 용기와 끈기는 우리에게 물음표를 던집니다.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혹여 절망감에 잠식 당하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말입니다. 프리다 칼로의 삶이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조심스레 바라보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S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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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iration] 프리다 칼로, 영혼의 다이어리 Frida Kahlo, Diary of the Soul



우리는 인생에서 꽤 긴 시간 동안 절실함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말입니다. 하지만 늘 절실하다 해서 그 결과가 좋다는 법은 없습니다. 간절히 원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우리의 삶을 덮치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실망하고 좌절하며 결국 포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태어난 순간부터 비운의 삶을 살게 되었어도, 고단하고 거친 삶이 계속되어도, 끊임없는 열정과 사랑을 간직한 채 살아갈 테지요. 멕시코 출신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를 소개합니다.
 
프리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 시티 교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비운은 6살부터 시작되었는데요. 6살이 되던 해 척추성 소아마비에 의해 오른쪽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고, 이는 평생 동안 고통을 안겨준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25년 프리다 칼로가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겪게 됩니다. 그로 인해 부러진 철제 난간이 프리다 칼로의 옆구리와 골반, 그리고 자궁까지 뚫고 나가게 됩니다. 요추의 세 곳과 쇄골, 갈비뼈가 부셔졌고 왼쪽 다리는 골절이 열할 군데, 오른발은 탈구 된 채로 으깨졌습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를정도로 암울한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녀는 그때부터 병상에 누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사고로 인한 아픔이 그림의 주된 주제인 동시에 본인의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겪게 되는 고통을 자화상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아에 대한 고찰과 자아의 재수용을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당시 그녀의 그림은 초현실주의적이라는 평이 지배했는데 그녀는 이러한 의견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린 그림은 자기의 고통을 표현한 것이었고 그러한 고통은 그녀에게 있어 현실이었기 때문이지요. 

프리다 칼로를 언급하면 디에고 리베라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립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17살의 프리다 칼로는 벽화작업을 하고 있던 멕시코의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사랑의 감정을 넘어 예술적,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며 유대감을 쌓아갔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는 문란한 사생활로 외도를 거듭했고, 결국 프리다 칼로는 세 번에 걸친 유산과 이혼 그리고 재결합 과정을 겪으며 여성으로서의 큰 고통을 겪었으나 그 고통을 작품으로 남기며 극복하려 애썼습니다. 그 강인한 의지가 이후에 진보적인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여 페미니즘의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녀가 직접적으로 페미니즘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유명했던 대부분의 화가들이 남성이었던 점, 그리고 그녀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여러 요소들 때문에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자화상을 보면 작품 속 누드는 남성의 성적 대상물로 전혀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여성 신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거나 감상자를 편안하게 놓아두지 않았는데 <부서진 척추> (La columna rota) (1944)가 확실한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부서진 척추>는 가슴을 가르고 몸을 관통하며 솟아오른 기둥이 조각조각 부서지고 몸에는 못들이 화살처럼 박혀져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다른 작품들 속 여성 누드에 나타난 이미지는 여성의 성적 매력을 부각시키는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에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그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페미니스트들이 공유하는 여성 차별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발의 의미로 해석 되기도 합니다. 

프리다 칼로는 47살에 폐렴으로 사경을 헤매다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그녀의 삶은 태어난 순간부터 비운이 따라 다녔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었고, 디에고 리베라의 외도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사랑을 했습니다. 
평생을 괴롭혔던 고통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당당히 마주하고자 했던 그녀의 용기와 끈기는 우리에게 물음표를 던집니다.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혹여 절망감에 잠식 당하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말입니다. 프리다 칼로의 삶이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조심스레 바라보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Sean